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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버선발 이야기

 

식목일 아침

2020년 4월 5일. 예전 같으면 식목일이라고 해서 하루 쉬었을 것이다. 정부 정책을 잘 따르시는 분들은 묘목 몇 개 들고 산으로 향했던 기억이 난다. 식목일이자 일요일. 집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책장을 서성이다 며칠 전 완독한 자그마한 책이 눈에 들어온다. 겉표지에 땀, 눈물, 희망을 빼앗긴 민중들의 한바탕. 버선발 이야기. 백기완.

 
백기완은 누구?

저자가 백기완 선생이다.
통일 운동가, 재야인사, 작가, 대통령 후보등 어느 한 가지로 규정짓기 어려운 분이다. 평생을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을 하신 분이 80중반이 되어서 소설을 출간했는데 이것이 버선발 이야기이다.

 
순 우리말 소설

이 책이 특이한 점은 영문, 한자, 외래어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순우리말로 쓰인 한글소설로 약 280여 쪽에 이르는 핸드북 사이즈(148x210mm)이다. 대개 이정도 분량의 소설이면 읽기에 수월하여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시간이 많은 분이라면 2~3일. 시간이 없는 사람이라도 1~2주 안에 완독이 가능하나 이 책은 순우리말이기 때문에 책 뒤편에 있는 낱말풀이를 수시로 들춰봐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책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완독까지 다른 책에 비하여 다소의 시간이 더 걸린다.

그러나 우리말의 정감과 예쁨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고 우리말의 다양성과 조어력(?)을 실감할 수 있다. 읽는 내내 사전을 찾듯이 낱말풀이를 찾다보면 어느새 우리말의 많은 어휘들이 당신의 뇌에 각인되어 있을 것이니 요즘 아이들 말로 개이득이다.

 
굿판을 벌여라.

이 책의 일부분을 소개하려 하였으나 저작권 문제가 우려되어 버선발 이야기에 대해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백기완 선생의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그 버선발이 알거지처럼 차리고 어느 굿판에 떡 갔어.
굿판이라는 건 잔치하는 데야. 굿이란 잔치거든.
떡 갔는데, 굿판에 들어가자마자 떡을 한 시루 놓고 있던 아주머니가 떡 하나 먹으라고 줘.
남의 걸 공꺼로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놀랬단 말이야.
그러고 몫이라고 가만히 있으니까, 김칫국도 줘. 김칫국을 먹고 떡을 먹으니까 목구녘으로 넘어가더라고.
그래 돌아서서 나오려고 했더니, 웬 할아버지가 이거봐 젊은이! 굿판에 올라면 옷은 빨아 입고 오든지 그래야지.

이 옷 갖고 가서 으슥한데 가서 옷 갈아 입어. 그러고 옷을 한 벌줘. 고맙습니다 하면서 어물어물했더니

동생이 왔나? 동생이 왔냐고? 동생두 하나 줘.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이게 뭐요. 이게 바로 민중의 정서라는 거요.
우리말로 얘기한면 새름이요. 새름.
정서를 새름이라고 하거든.
굿판이 벌어지고 잔치가 벌어지믄 자기 옷들 차려입고 들어가잖아요.
남의 옷도 채려주는 것이 굿이야. 그것이 잔치고.
이 자본주의 문명의 뿌리를 욕을 하고 제시한 것이 바로 이 굿판 얘기인데

이 점을 유심히 살펴서 책을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ㅡ 2019년 4월 23일 버선발 이야기 출판기념회 인터뷰 중

 

노나메기를 꿈꾸며
니나(민중)의 삶을 니나의 언어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는 저자의 수고로움과 철저함이 마냥 부럽고 대단하다. 이 책을 출간하기 위해 어려운 수술을 극복하고 준비했다고 하니 저자의 의지는 나이와는 관계없이 젊었을 때의 의지와 변함없이 여전히 굳건한 듯하다. 올해로 88세인 그가 작년에 내어 놓은 이 책은 본인의 이야기이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버선발 개인이 아니다. 버선발이 만난 수많은 니나들이 바로 주인공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구르는 것은 한 두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니나들. 즉 보통 사람들, 깨어있는 시민들이라는 것을 이 책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것이 노나메기이다. 노나메기라 함은 너도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살곳(세상) 니나의 바랄(희망)이다. 멋지다. 노나메기. 노나메기 세상 우리 앞에 어서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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