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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

항해하는 삶 열한 계단

우연히 계단과 마주하다.

몇 년 전 팟빵(팟캐스트의 RSS를 수집하여 제공)의 상위권 순위에 올라와 있는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오디오를 듣게 되었다. 출연진 중에 주로 사회를 맡아 대화를 이끌어 가는 채 사장이다. 목소리로만 듣는 채사장은  장난기가 있는 유쾌한 청년 같은 느낌이 있는가 하면 책과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진지하고  깊게 파고드는 모습을 보인다.

 

지대넓얕은 지금은 방송을 하고 있지 않지만 많은 에피소드 중에 채사장의 책 열한 계단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꼭지에서 채사장과 다른 패널(깡샘, 김도인, 덕실이)이 나누는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한 사람의 성장기라고 해도 좋고 인문학의 소재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여 열한 계단에 대한 리뷰를 해보고자 한다.

 

채사장은 누구인가?

저자의 필명은 채사장(채성호)으로 학창시절(대학교때) 여러 분야에 많은 독서를 하여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게 된다. 문학에서 출발하여 종교, 철학, 과학, 역사와 경제, 삶과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지적 편력으로 강의와 저술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표류하는 삶이 아닌 항해하는 삶을 원한다. 항해하는 삶을 위해 내적인 성장이 필요하며 내적인 성장을 이루기 위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식과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불편한 지식과 만나고 그것을 통해 성장하고 불편한 지식이 지혜가 되고 안정감을 갖다가 다시 불편한 지식을 통해 성장하며 자아와 세계를 인지하며 하해를 하는 자신을 이야기하며 독자들이 본인의 항해일지를 살펴보고 표류하지 않고 스스로 항해할 수 있게 도움이 되는 나침반이 되고 싶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가 보자.

열한 계단은 저자가 소년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읽었던 책 또는 알게 된 인문학적 지식을 통해 성장해 가는 것을 시간 순서대로 기술하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총 11개의 소주제별로 자신이 고민했던 것과 그것의 해결방법으로 찾아냈던 것들을 본인의 현실과 적당히 섞어서 잘 표현되어 있다. 

 

책 속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채사장은 항해과정에서 정신의 성장과정을 헤겔의 변증법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정(正), 반(反), 합(合)의과정으로 높은 계단으로 오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구조는 이와 같이 정, 반, 합의 연속적인 원리에 의해 구성되어 있다.

 

소년이 첫 번째 계단에 오른다. 죄와 벌이라는 소설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존재임을,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결연한 의지나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깨닫는다.

 

두 번째 계단에서 저자는 로쟈(죄와 벌의 주인공)가 구원받고자 선택한 신약성서에 주목하고 절대자(신)에게 의지한다.

 

세 번째 계단의 대학생이 된 저자는 외부로부터의 구원이 마뜩지 않다. 스스로 구원하는 방법을 찾아 불교에 관심을 갖는다. 이 장에서 채사장은 몽골에서 밤하늘의 신비한 아름다음에 도취된다. 평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린다면 이때일 것이라고 한다.

 

네 번째 계단에 올라 구원의 문제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현실과 실존하는 인간의 존재에 관한 철학에 몰두한다. 이 장에서 니체의 신의 죽음과 초인, 영원회귀에 대한 개념을 설명한다.

 

다섯 번째 계단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주관적인 세계가 아닌 객관적인 세계에 초점을 맞추어 과학 서적에 탐닉한다.

 

여섯 번째로 오른 계단에서 군 시절의 안병장과 체 게바라를 비교하며 이상적인 인간상에 열중한다.

 

일곱 번째 계단에서 저자는 군대를 전역하고 사회인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열중하면서 현실적인 인간이 되어간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소개하며 영혼이 늙어버렸다고 탄식한다.

 

여덟 번째로 내디딘 계단에서 제주도에서의 불행한 사고로 죽음의 위기를 맞으면서 삶을 수용하는 자세를 아르헨티나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삶과 음악에서 배운다.

 

아홉 번째 계단이다. 삶 너머에 있는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가 궁금해진 저자는 '티벳 사자의 서'라는 죽은 자를 위한 안내서를 소개함으로써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하려 애쓴다.

 

열 번째로 오른 그의 계단은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한 흔적이 나타난다. 우파니샤드라는 힌두 경전에 나오는 본질적 자아에 대해 살펴본다. 이 장의 말미에 저자는 우파니샤드가 당신이 이 세상의 유일한 주인공이었음을 깨닫게 합니다라고 한다.

 

이제 마지막 계단에 오른다. 길고 긴 여행으로 성장한 저자는 자아의 경계에 선다. 그러나 구모양의 지구를 빗대어 경계도 없고 출구도 없다고 하며 붉은 노을을 응시한다. 그러면서 다음 계단을 생각한다. 

 

말과 글로 생계를 꾸릴 수 있다면.....

인터넷 검색창에 채사장을 쳐본다. 이제 40 정도 된 사람이다. 저자의 40 평생은 그다지 극적이거나 드라마틱하지 않다. 보통사람들의 흔한 에피소드이다. 그러나 그의 사유방식은 지속적인 독서와 질문을 통해서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보다 훨씬 세련되고 정교해진다. 더군다나 입력된 것을 출력해내는 적당한 글쓰기 스킬까지 있다. 말하기와 쓰기로 생계까지 꾸려내는 것을 보고 부럽지 않다면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리라.

 

수많은 독서와 깊은 사고에서 베어 나오는 저자의 삶과 죽음, 역사, 철학, 과학에 대한 통찰이 이 책에 어느 정도 담겨있다. 저자가 평생을 고민해 온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것을 보면 어느덧 책의 마지막 부분에 와 있을 것이다.

 

인문학에 배고픈 사람에게 맛있는 한 끼

인문학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면 이 책을 천천히 정독하면 좋을 것이다. 딱딱한 고전을 부드럽게 마사지해서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독자들에게 드시라고 들이민다. 쓸데없이 장황한 용어설명도 없으며 간략하게 도표를 중간중간에 넣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종교에 관해, 삶과 죽음에 대해, 철학에 대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하고 관심을 갖도록 하는데 충분히 유용하다. 책 값에 비하여 내용이 알차다. 가성비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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